이 글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갖았던 좌담회
‘다빈치 코드 열풍, 진단과 성찰’과 EBS에서 방영했던
‘ 다빈치코드의 진실’에서 요약 정리한 것이다.


영화 <다빈치코드>

요즈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다빈치코드>는
한국에서만도 관객 300만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2003년에 출간된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4300만부 이상 팔렸고 40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제작비 1억 2천 5백만 불을 투자한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 1위로서 흥행에 성공했으며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다빈치코드>는 팩션(faction)이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으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재창조한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프랑스의 영화 관람자들 24%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믿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난후 교회와 성서에 회의를 느껴 냉담 한다는 부모들의 걱정이 커간다.

<다빈치코드>소설이 쓰여 지게 된 것은 이러하다.

1885년 를레샴프의 한 신부가 성전개축을 하면서
이상한 어떤 문서를 발견했는데 이 문서를 팔아서 성전개축기금으로 썼다.
그 후 1995년 친척 되는 사람이 카페에서 이 문서를 이용하여
손님을 끌여 들여 일부분을 읽어주었다.
1992년에 <성혈과 성배>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썼으나
1995년 BBC방송을 통해 이는 의도된 사기극임을 사과방송을 했다. 그러나 댄 브라운이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상업주의와 흥미를 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다빈치코드>에서 성배를 여성의 자궁으로 보며 레오나르드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그림에 예수 옆에 있는 사도는 요한이 아니고 막달레나 마리아라고 한다.

그녀는 성배로서 예수와 나란히 앉아 있다고 한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 V자형 구도는
여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화가들도 최후의 만찬을 그렸고
예수 옆에 요한사도로 그렸다.
당시에 V자형 구도는 역동적이 구도로서
화가들이 즐겨 그렸으며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또한 성배는 원래 기독교 상징은 아니었고
오래된 여신숭배와 여성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다빈치코드>의 주요한 문제점은 이것이다.
댄 브라운은 325년 콘스탄틴 황제가 니체아공의회를 통해
예수를 억지로 신격화했으며 80여개의 복음서중에서 정치적으로 문제되는 것을 정전에서 제거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역사적인 오류가 있다.
정전을 정하는 과정은 2세기부터 있었다.
하느님 말씀으로 생각되는 복음서와 서간을 찾기 시작했고
이레네오 성인은 180년경에 27권의 신약성서 문헌을 정전목록에 넣고 있다.
370년에 이냐시오 주교는 지금 사용하는 신약성서를 정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정전의 역사는 2세기 초부터 5세기까지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댄 브라운은 이러한 정전에 대한 역사적인 것을 왜곡시킨 것이다.

그리고 댄 브라운은 80개의 복음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영지주의에 속하는 복음이 5개 있고 외경에 속하는 단편들이 20여개 있다.
댄 브라운은 자기가 인정하는 외경복음 이용해서
<다빈치코드> 핵심 테마로 끌어들이고 있다.
성혈과 성배에 대한 신약외경에 나타난 논증들을 이용한다.

신약성서정전에서는 예수의 결혼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당시 유대인 관습으로는 17세-18세에 결혼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성서에서는 결혼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필립보 복음서에서 막달라 마리아 여자를 companion이라고 표현한다.
companion은 그리스어 원어인 ‘코이노 노스’를 번역한 것으로
‘친교를 나눈 사람’ 즉 길을 같이 가는 동반자,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면 친교를 나눈 대상은 누구일까?
친교를 나눈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여자만이 아니다.
예수님과 항상 함께 다녔던 세 사람,
즉 어머니 마리아, 누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이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 막달라 마리아만 친교를 나눈 사람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와의 입맞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고린토 16장 20절에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십시오’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에 입맞춤은 친교의 종교적인 나눔이었지
성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것은 아니다.

영지주의의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영과 육이 대립되는 것으로서
육체를 죄악시 하는 것이다.
필립피서에서 보면 “자유인과 처녀”를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말한다.
처녀는 성적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여인인 것이다.
또한 이 서간에서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결혼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는 신성한 결혼을 말하는 것이며
영적인 일치를 위해 처녀의 방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처녀의 방은 상징적인 언어로 영적 의미인 것이다.
영적인 것을 댄 브라운은 육적인 결합으로 바꿔 이야기한다.

토마복음에서는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이 나온다.
이 복음 114항에서 여성으로서는 참 생명에 들어갈 수 없으며
그노시스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영지주의가 갖는 여성관인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양성을 함께 자신 안에 구비된 인물로 그린다.
아담과 하와와의 성적 분리가 죄의 시작인 것이며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아담과 하와를 재결합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는 양성이 결합된 인물이며 영지주의 자들은
그리스도처럼 지식을 통해 양성이 구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성적인 결합이 필요 없다.
토마복음은 이런 맥락에서 쓰인 것이다.
그러나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 이것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예수와 마리아가 성적 결혼을 한 성혈과 성배의 결합으로 말한다.
2세기- 3세기에 묘사하는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를
후대에 외경을 근거로 해서 마치 역사적인 것처럼 쓴 것이다.
사실인양 주장하면서 그는 복음서를 인용한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 꿈란 두루마리에
성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꿈란 두루마리를 쓴 이들은 예수라는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에 예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댄 브라운은 큐 문헌은 바티칸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예수기 직접 쓰신 문헌이라고 말한다.
큐 문헌은 예수님이 직접 쓰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집으로 40-60년대 편집된 사도들의 기록인 것이다.

<다빈치코드>는 1466년 생클리어 문서를 시온 수도회가 보관하고 있으며 시온수도회 수장명단에 템풀기사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온수도회는 템풀기사단과 아무 관계가 없을뿐더러
생클리어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조작된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온수도회는 1619년 오플레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예수회에 밀려났으며 밀려난 후 1950년까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수도회는 평범한 가톨릭 단체였으며 오래 지속돼지 못했다.

오푸스데이는 1928년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가 창설한 조직으로 가톨릭 교리를 전파하고 일상에서 신성한 믿음으로 살자는 취지로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 가톨릭 가치에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수도회이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 소설에서 조직원들이 온종일 기도만 드리고 수도자 가운을 입고 음모론에 연류된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매일 미사 드리고 한 시간 기도드리고
그리고 대부분 시간을 직장과 가정에서 보내고 평범한 생활을 한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 이들을 의혹의 눈으로 본다.
그들은 바티칸에 거액의 돈을 벌어주고 바티칸이 오푸스데이와
검은 거래를 한 것처럼 묘사한다.
또한 이들은 육체를 학대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댄 브라운은 역사적 사실에 온갖 전설을 갖다 붙어
현대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이 시온 수도회를 만들었고 직접 비밀문서를 작성했고
그들 중심으로 신화를 각색한 것이다.

<다빈치코드>는 대중에 무엇인가를 충족시켰다.
현대인들은 지난날의 전통과 연결 짓거나 진실한 근원을 찾으려하는데 스릴러 소설이 이 욕구을 자극시킨 것이다.

왜 <다빈치코드>소설과 영화가 흥행을 했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무엇인가?

현대는 철저히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중심적으로 산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부담스럽다.
예수님이 인간적으로 인간들을 치유해 주시고 병자를 고처주심에 대해서는 감동을 받지만 그분이 하느님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분은 처녀의 잉태였고 육신이 부활했다고 한다.
따라서 가까이 하고 싶은 예수의 신성을 벗겨내고
남자와 관계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에 대해 탈신화화하고 탈신성화 시키려 한다.
성서에서 예수는 양성적으로 나타나지만
댄 브라운은 이런 예수를 남성화 시켜서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자기들의 코드에 예수를 맞춤으로 만족감을 얻으려 한다.
초월적인 예수를 나의 코드로 만듦으로 얻는 희열이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이다
현대는 비종교적이면서도 종교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현대문화 코드의 옷을 예수에게 갈아입힌다.

이는 음모이론이다.
음모이론적인 측면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활력소가 된다.
신이론에 대한 음모이론은 더욱이 재미있다.

현대사회대중의 특성은 의미상실에 시달리며 의미를 찾아 헤맨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공동체적 철학적 가치는 무너졌다.
그러나 의미생성시대로 신화를 주제로 하는 문화 상품은 성공한다.
현대인은 신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형, 재구축, 탈신화화 하고 재신화화하는 시대이다.
기독교 신화를 전통적 관점이 아니고 비전통적 관점으로
새로운 신화화, 우주화 하려한다..

젊은이들은 교회는 지켜야 될 것도 많고 구속도 많고 자유를 억압한다고 본다.
오늘날 교회의 교리나 전례에 충족치 못한다.
교회의 폐쇄성이 종교적으로 이끄는데 실패했다.
유연한 접근을 할 수 있는 시도가 필요 하다.
오늘의 사람들에게는 현대문화 코드로 가야한다.
즉 교회는 대중문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야하며
대중영화를 신앙과 연결 시켜주어야 한다.
영화도 내 생활의 일부이고 신앙관점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대중상업 영화에서 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영화로 모티베이션을 주어야 한다.
영화를 통해 종교 인식과 새로운 전환점을 주기 위해서는
무겁게 가서는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이번 <다빈치코드>를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신앙정체성을 재 정검 하는 기회로....
<다빈치 코드>가 오프스데이에게 가한 비판은 자극을 주었고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으며
오히려 영화로 인해 오프스데이 성소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다빈치코드>신드롬을 통해 교회는 대중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하고 선교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9-21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