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소명'이 뭐예요?
                                      * 2008 2월호 디다케에서 퍼왔습니다.
                                                    양종규_사무엘 / 본지 기자

이제 막 신입교사 딱지를 뗀 2년차 교사 K군. 열심히 준비한 교리를 마치면서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신부님께서 강론 때 ‘소명’이라고 말씀하시던데 그게 뭐예요?” 순간 K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분명 여러 번 들어보기는 했는데, 막상 설명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명-하느님의 부르심    

소명(召命)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불러서 명령하다.’라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신하를 부르는 임금의 명령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 안에서 사용될 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이웃에 봉사하기 위하여 부름 받았다는 점에서 모두 소명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소명 이야기

성경을 살펴보면 하느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고 부르셔서, 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섬기며 당신의 구원 계획을 널리 알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부르심에 있어서 이러한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이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느님께서는 개별적으로도 인간을 부르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창세 12, 1-3), 모세(탈출 3, 4), 사무엘(1사무 3, 4-6. 8-10), 다윗(1사무 16, 1-13; 2사무 7, 8; 시편 89, 21) 등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신약 시대에는 성모 마리아(루카 1, 38)와 예수님의 제자들(마태 4, 18-22; 마르 1, 16-20)이 소명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여러 장면들을 통해서 소명이 지니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르심의 주도권은 언제나 하느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처럼 하느님께 소명을 청하는 예외적인 경우(이사 6, 8)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사람이 이에 응답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즉, 소명은 하느님의 은총이자 선물입니다.

둘째, 소명에 따른 사명과 책임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를 비롯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경 속 인물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 12),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예레 1, 9)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셋째, 소명을 받은 사람은 이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르심의 은총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인간이 이를 믿고 따르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명도 가꾸어야 한다!

자, 지금까지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탈렌트의 비유’(마태 25, 14-30)를 통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 비유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그의 종 셋에게 각각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 중 첫째 종과 둘째 종은 장사를 하여 돈을 두 배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셋째 종은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마침내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셈을 하였는데, 자신의 재산을 늘려 준 부지런한 종들과는 기쁨을 나누었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주인을 맞은 종은 바깥으로 내쫓깁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돈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한 종을 주인이 내쳤다는 것이 이 비유의 주제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 읽어 보면 주인은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돈을 나누어 주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종들에게 부당하거나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셋째 종은 이러한 주인의 신뢰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인의 호의를 곡해하기까지 합니다(마태 25, 24).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재산을 맡긴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첫째 종이나 둘째 종과 같이 당신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그 소명을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 소명이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재주와 능력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에게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소명의 의미를 망각하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일에 게을러진다면, 탈렌트의 비유에서 나오는 셋째 종처럼 하느님께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내가 이루어야 할 ‘과제’이고,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이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요청’입니다. 더욱이 교사로서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소명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게 이끄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소명에 대해 가르치며 우리가 맡은 교사라는 소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고, 아이들과 함께 주님의 성실한 일꾼이 되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